당신이 합리적이라고 믿는다면 멍청이!

[토요판]
생각에 관한 생각

2002년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도드라졌던 인물은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78·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이었다. 카너먼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심리학자가 된 것은 ‘행동경제학’을 창시해서였다.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붙여 탄생시킨 행동경제학은 이후 주식투자부터 사회정책까지 많은 분야에서 관심의 대상이 됐다.

카너먼이 설파하는 핵심 주제는, 좀 거칠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멍청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그 까닭은 우리가 빠른 직관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성이 있는 탓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생각의 작동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우리 모두 멍청이임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다양한 심리학 실험과 이론을 토대로 주장했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란 믿음을 토대로 성립하는 시카고 경제학파와는 전혀 다른 경제학적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행동경제학 창시 노벨상 수상자
심리학 실험으로 생각방식 분석
직관-신중 사이 갈등·오류 지적

그가 노벨상 수상 이후 9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펴낸 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행동경제학은 무엇이며 기존 고전경제학과는 무엇이 다른지 이해를 돕는 대중교양서지만, 줄줄이 이어지는 도형문제부터 곱셈풀이나 선택 과제까지 온갖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심리학 실험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마치 퀴즈풀이하듯 읽히는 책이다.

책은 두 등장인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어떤 일이 생기면 직관적이고 빠르게 생각을 뽑아내 힘을 안 들이고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신중하고 느리게 생각한다. 대신 게으르고 우물쭈물 주저하기 일쑤다. 당연히 두 사람의 자아도 전혀 다르다. 빨리빨리 생각하는 앞사람은 경험에 의존하는 자아를 지녔고, 느릿느릿 생각하는 뒷사람은 기억에 의존하는 자아로 세상을 살아간다.

실은 이 둘은 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이 상반된 두 사람이 공존한다. 카너먼은 앞사람을 ‘시스템1’, 뒷사람을 ‘시스템2’라고 이름붙인다. 시스템1은 직관 사고틀로 일상에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종종 연상작용에 크게 휘둘리는 ‘편향’이란 치명적 약점을 지녔다. 반면 시스템2는 판단 사고틀로 각자 기억을 토대로 논리적인 작업을 맡는데 복잡한 계산이나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활동을 담당하면서 시스템1의 오류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카너먼은 우리가 살아가며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을 이 두 가지 생각 시스템의 상호관계로 파악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파고든다.

우리는 스스로를 나름 합리적이고 냉철한 시스템2로 살아간다고 믿지만 카너먼은 우리는 시스템1에 더 휘둘리는 멍청이임을 밝혀낸다. 우리는 살면서 닥치는 다양한 상황에서 먼저 시스템1로 생각하다가 안 풀리면 시스템2를 가동시키는데, 문제는 이 시스템2가 게으르고 겁이 많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카너먼이 이런 연구를 하게 된 것도 전문가인 자신 역시 ‘직관의 편향’에 놀아나는 멍청이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은 앞부분 내내 온갖 다양한 심리학 실험을 끌어다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오류를 저지르는지 보여준다. 가령 ‘카’라는 이름의 회사와 ‘PXG’라는 이름의 두 회사가 있다고 칠 때, 사람들은 이름이 발음하기 더 쉬운 ‘카’라는 회사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결국 이 회사의 주가가 더 많이 오르기 쉽다.

먼저 입력된 정보를 맹신하는 것도 우리의 멍청한 속성이다. “간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이가 114살 이상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간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35살 이상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보다 간디의 사망 나이 추정치를 더 높게 추정하게 된다.

카너먼은 연구를 계속할수록 이 두 시스템이 갈등과 오류를 일으키는 문제가 예상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다. 인간이란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심리학 실험과 거기서 나온 근거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우리 스스로 저지를 수밖에 없는 오류를 개선해야겠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게 이 책이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이자 매력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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