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찾아 병 고치는 무당은 정신과 의사의 조상”

귀신은 `무의식의 콤플렉스’
믿으면 있고 안 믿으면 없어
샤먼은 고통과 치유의 상징
“사라져도 모습 바꿔 나타나”

정신분석학의 권위자는 ‘귀신’의 존재를 어떻게 볼까. 최근 (한길사 펴냄)을 낸 이부영(사진) 한국융연구원 원장을 지난 3일 서울 성북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장과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의 석좌교수를 지낸 이 원장은 1961년부터 스위스 융연구소에서 6년간 머물며 융학파 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했고, 정년퇴직한 1997년 융연구소를 설립해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 정신분석의 대가 가운데 그가 더욱 독특한 것은 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부터 시작해 융연구소와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한국의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써왔다는 점이다. 이번 책은 평생 샤머니즘과 정신분석학의 양날개로 날아온 연구의 결정판이다.

귀신을 불러낸다는 무당을 평생 관찰하고, 인간의 심리를 연구해온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다. 첫 답변은 “실제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첫 답변에 대한 실망스런 표정을 읽었음인지 그는 금세 부연했다.

“귀신을 실체로 믿는 사람들에겐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 보면 귀신은 무의식의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

20대 때 가톨릭에 귀의한 신자이면서도 ‘융 신자’라고 할 만큼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신봉자인 이 원장은 융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융의 노트를 보면 ‘처음엔 무의식의 투사라고만 생각했던 귀신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어 1960년대 융연구소에서 수련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경남 진주에서 ‘아이의 귀신’이 들렸다는 무당에게 점을 친 체험을 들려주었다.

“무당이 나의 돌아가신 선친이라며 ‘나는 추운 데서 고생하고 있는데, 너는 네 걱정만 하고 있느냐’고 추궁하는데, 그때 정말 선친이 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해 뭔가 말로 표출했다면 계속 대화가 이어졌을 텐데, 이성적이고 합리성을 존중하는 내 쪽에서 더 반응하지 않자 무당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문학은 픽션(허구)이지만, 거기에 진실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죽은 자(귀신)와 대화를 하거나 멀리 있는 가족의 죽음을 꿈 등을 통해 인지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의 무한한 의식이 가지고 있는 ‘절대 지(모든 것을 앎)’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동시성의 현상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융의 수제자이자 자신의 스승인 폰 프란츠가 “죽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인지할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한 말을 전하며 흥미있는 일화 하나를 더 들려주었다.

“죽은 자에 대해 5번의 꿈을 꾼 의뢰인이 폰 프란츠에게 해석을 부탁했을 때, ‘2건은 죽은 사람이 진짜 다녀간 것이고, 3건은 자신의 콤플렉스가 나타난 것’이라는 답을 듣고, 믿기지 않아 같은 꿈을 들고 융에게 분석을 의뢰하자 융도 똑같은 결론을 내려 놀랐다고 한다.”

이 원장은 “샤먼(무당)은 엑스터시로 황홀경에 빠져 환자의 ‘잃어버린 혼’을 찾아줘 병을 고치는데, 그런 면에서 그들은 ‘정신과 의사들의 조상’”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 책에서 샤먼이 되기까지 꿈과 무병을 통해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비롯해 수많은 고통을 겪는 입무(入巫)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 고행과 고통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 책의 부제를 ‘고통과 치유의 상징을 찾아서’라고 한 것도 샤먼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샤먼이 힘든 고통의 과정을 겪고 자기를 넘어섬으로써 치유자로 거듭나는 것과 같이 누구나 고통을 겪고 이겨냄으로써 내적으로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요즘은 아이들을 과잉보호해 의존심만 갖게 하고, 기를 살려주기만 했지 충동을 절제하고 감내하도록 길러내지 못해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 채 쉽게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어른들도 무조건 고통을 기피하고 술과 환각제로 이를 넘길 생각만 할 만큼 나약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진정한 종교인이 사라지고 장사치가 많아진 것처럼 샤먼의 세계도 가짜 무당이 많다”고 지적하면서도 “신화를 제대로 보존해오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만신(萬神)은 별처럼 많은 무의식을 보여주고, 샤먼의 무가(巫歌)는 고대 신화와 원형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샤먼은 사라져도 운동 경기의 응원 무대에서, 광화문의 시위 현장에서, 예배당에서 모습을 바꿔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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