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의 월드컵 프로파일링]’축구의 범죄심리학’으로 살펴본 러시아전

Brazil Soccer WCup Russia
러시아 대표팀이 지난 14일(한국시간) 한국전 등 조별리그 경기에 대비해 훈련하는 동안 그라운드 안에 축구공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투(브라질) | AP연합뉴스


범죄심리 수사기법인 프로파일링은 범죄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행동 증거’를 분석해 범인의 정체를 추정해 낸다. 프로파일링을 통해 분석하는 행동 증거에는 피해자의 특성, 범행 현장의 특성, 그리고 범죄 수법이 포함된다. 즉 범죄자가 범행을 하게 된 원인, 동기에 해당하는 ‘왜(why)’와 범행에 성공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과 방법에 해당하는 ‘어떻게(how)’를 알아낸 뒤 그 이면에 있는 욕구와 충동, 이해관계 및 범행에 사용된 습관과 기술의 수준, 특성 등을 읽어내 범죄자의 정체를 밝혀낸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증거인멸, 현장 조작 행위의 특성 역시 분석의 대상이 된다. 특히 지능적 범죄자나 범죄기술과 경험 수준이 높은 전문 범죄꾼, 혹은 현장에 증거를 잘 남기지 않는 유형의 연쇄범죄자의 경우, 수사진은 가능한 모든 수사방법을 총동원하면서 끈기와 인내의 극단에 이를 때까지 범인이 범하는 ‘단 한순간의 실수’를 찾거나 기다린다.

축구는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속이는 드리블과 패스워크로 방어망을 뚫고 치명타를 가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범죄를 많이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상대의 습관과 성격, 욕구와 수법을 철저히 분석해 대응하고,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끈기와 인내로 공격과 방어를 지속하다 단 한순간의 실수를 포착해 ‘골’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범죄수사’를 닮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러시아를 이기기 위해선 러시아 팀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 대비해야 하며, 경기 중에도 상대가 범하는 단 한차례의 실수의 순간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그동안 러시아 대표팀이 치른 경기들은 ‘행동 증거’다. 팀 전체는 물론 개별 선수들의 성격과 습관, 상황별 대응 패턴을 읽어내고 그에 걸맞는 훈련을 통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골키퍼와 수비진으로부터 미드필드 중앙과 양 날개로 이어지는 공격의 패턴과 수비 상황에서의 움직임에는 이미 수많은 훈련과 경기를 통해 ‘습관화’된 것이 있다. 범죄현장에서도 대문이 열려있어도, 굳이 좁은 창문으로 침입하는 범죄자들이 있다. 같은 도구만 사용하는 빈집 털이범도 있다.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전문 범죄꾼의 특성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러시아 팀에 대한 분석에서 ‘결코 순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습관’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습관’에 대한 대비책을 충분히 준비해두었다면, 의외의 승리를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 역시 같은 분석과 대응을 할 수 있다. 같은 정도의 분석과 대비라면, 평소 전력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와 자세에서 승부가 갈리게 될 것이다.

범죄심리학과 수사기법이 필요한 것은 감독과 전력분석관, 선수들만이 아니다. 심판 역시 선수들의 지능적인 눈속임과 반칙행위를 제대로 적발해 내야 한다. 개막전 경기에서 일본인 주심 니시무라가 애매한 페널티킥 판정을 통해 크로아티아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에 해당할 만한 치명상을 입힌 사건은 오래도록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만약 많은 전문가와 언론 및 팬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니시무라 주심이 브라질 프레드 선수의 ‘시뮬레이션’에 속은 것이라면 냉철한 수사관이나 판사와 같아야 할 심판으로서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순간적인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최고의 축구 제전인 월드컵, 그것도 개막전에서, 한 쪽 팀에 치명상을 안기고 다른 팀에는 불로소득적 승리를 안겨다 주는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물론 심판도 인간인지라 90분이 넘는 경기의 매 순간 모든 장면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체력과 관찰력 및 경험에 덧붙여, 선수들의 욕구와 충동, 습관과 상황의 특성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위험지역’으로 불리는 ‘골 에에리어’ 부근에서의 상황과 행동은 결코 놓치거나 속거나 오판해서는 안된다. 마치 경찰이 초동조치를 잘못하거나, 범인의 현장조작과 증거인멸에 넘어가 진범은 놓치고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잘못과 마찬가지다. 물론 돈을 받거나 친분 등 때문에 일부러 한쪽 편을 들기 위한 ‘오심’이라면 승부조작이며 범죄행위다. 범죄심리 수사기법은 승부조작 우려 상황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자, 이제 승패라는 ‘결과’만이 아닌 양팀과 선수들, 그리고 심판을 범죄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며 대한민국과 러시아 전을 관전해 보자.

범죄과학연구소장.전 경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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