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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애니

천재 심리학자의 따스한 마음 처방전

등록 : 2014.01.03 19:28
수정 : 2014.01.03 19:28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 의 이종범 작가

대학 때 교양 과목으로 심리학 수업을 꽤 재밌게 들은 적이 있다. 덕분에 정신분석학 외에도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고 ‘심리학=프로이트’라는 선입관이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수업이 내게 도움이 된 건, 내가 심리학에 도통해졌다는 착각 대신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읽기 어렵다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웹툰 의 이종범 작가를 긍정적인 의미로서 지식소매상이라 생각하는 건 그래서다.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종범 작가는 연세대 심리학과 출신이다. 천재 심리학자인 닥터 프로스트가 내담자가 가진 마음의 병을 치료해나가는 이 만화에는 전공자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고 풀어내기 어려운 정신분석학, 인지심리학, 인본주의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 지식과 상담 노하우가 인용된다. 가령 자신의 멘토였던 선배를 동경하며 망상 장애에 빠진 아이돌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라캉이 말한 타인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단순 인용이 아닌 작가가 꼭꼭 씹어 스토리에 담아낸 심리학 지식들은 간결하되 핵심을 찌른다. 데뷔작인 에서 재테크에 대한 노하우를 역시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던 작가의 실력은 에서 훨씬 높은 수준으로 발휘된다.

가 심리학을 주제로 한 좋은 만화인 건,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식을 쉽게 이해시키는 미덕 때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이 작품의 스토리는 심리학이라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당의정이 아닌, 심리학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즉 심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학이 필요하다. 한 에피소드마다 인용되는 심리학 이론이 과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이처럼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사이코패스나 이중인격 같은 자극적인 소재 대신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나 불면증 같은 사례를 다루는 건, 이런 마음의 병이 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며 심리학은 이런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의술이 될 수 있다. 교수라는 직함보다 닥터라는 직함이 눈에 띄는 건 그래서다.

더 좋은 건, 하나하나의 케이스를 해결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프로스트의 모습이다. 조교인 성아에게 공감이란 착각에 불과하다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던 재수 없는 천재는 어느새 자기 학교에 자살하러 온 학생을 구하기 위해 헐떡이며 뛰는 사람이 되었다. 천재 심리학자에게도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자신과 대면하는 건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책이 아닌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서만 조금씩 가능해진다. 막막함과 희망이 공존하는 이 거리감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대하는 겸손과 자신감 모두를 배운다. 아무래도 가르치는 능력은 닥터 프로스트보다 작가가 더 나은 것 같다.

위근우 매거진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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