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5년 전 필자가 들어갔던 면접 시험장에서 들은 말이다. 8명의 면접관이 온갖 ‘압박 질문’을 던진 뒤, 한 면접관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짧은 시간 동안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한 필자는 ‘아프리카 주민’이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아프리카의 푸른 초원과 야생동물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왠지 그곳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질문을 던졌던 면접관 역시 의도를 알 수 없는 대답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만 ‘허허’ 웃어버렸다. 그리고 필자는 그 면접에서 낙방했다. 지원자도 면접관도 시쳇말로 ‘멘붕’인 대화를 나눴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게 무리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래된 연장통’을 읽으면서 필자의 대답에 진화심리학적인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인류는 선사시대의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생활해 온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대해 선천적으로 끌리게끔 진화했다는 것. 사막이나 극지방, 정글, 목초지 등 지구상의 다양한 서식지 중에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서식지였기 때문이다.

사바나에는 푸른 초원 군데군데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 조상들이 사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가 있다. 동식물이 주로 지상 2m 내에 집중돼 있어 먹이를 구하기 쉽고, 나무그늘 밑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며, 맹수를 피해 나무로 올라갈 수도 있다. 또 시야가 트여 있어 적들을 살피기도 좋고, 다양한 고도의 지형에 올라서서 길을 찾기도 쉽다.

저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학부 교수는 여러 학자들의 이론과 실험 내용 등을 소개하며 필자의 ‘우답(愚答)’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사바나에 부족한 딱 한 가지, 물에 대한 사람의 심리도 소개했다.

물이 부족한 사바나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풍경이건 물만 있으면 미적 쾌감을 느끼고 고요한 느낌을 갖도록 진화했다. 청계천이 제대로 복원한 자연 하천이 아니라 인공으로 물을 끌어다 만든 하천임을 알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이 좋은 인상을 얻는 건 어쩌면 물에 대한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바나와 물에 대한 이야기처럼 사람이 가진 심리와 생활 속에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책 안에 가득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거주지, 남녀의 차이, 이야기와 웃음의 존재 이유, 전염병과 민족의 차이 등에 대해 하나씩 풀어내는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쉽다.

적당한 나무와 풀, 동물이 살고 있는 사바나는 인간 조상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사진은 베네수엘라 그란 사바나지역의 모습. 위키미디어 제공
●진화를 일상생활로 초대하려는 노력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제목은 저자가 인간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비바람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포식동물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적 공구’가 빼곡히 들어있다는 것.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남아 있던 각종 적응 기제는 망치와 톱, 니퍼, 대패 등이 잔뜩 들어 있는 연장에 비유됐고, 이런 것이 담긴 마음이 오래된 연장통으로 표현된 것이다.

물론 마음 속 공구가 최근에 등장한 현대적인 문제까지 대비하지 못해 가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연선택에 따르면 먹이 공급이 충분하기 않았던 원시 우리 조상들은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선호하도록 진화했고, 이 때문에 단 것을 즐기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이런 성향은 생존에 유리한 게 아니라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질병을 부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진화이론이 인간 심리와 행동에 미친 영향을 하나 둘씩 이해하게 된다. 오랫동안 믿어졌던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생물학자들이 진화이론으로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듯, 진화심리학자들도 진화심리학으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유머, 소비, 종교, 도덕, 음악, 예술 등 진화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진화와 연결되는 장면을 보면 어느새 진화심리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을 설명하는 가까운 학문이면서, 인지과학과 뇌과학 등 여러 분야의 과학을 두루 활용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진화심리학의 처음과 끝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의 관심사를 진화와 엮어 이 분야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분야가 재밌다는 점과 진화심리학에서 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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