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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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마음

로런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에코의 서재
EBS 제작팀, 김지승 지음, 지식채널

심리학의 기원은 철학의 인식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행동과학으로서 심리학의 태동은 19세기 후반 빌헬름 분트의 실험실 개설을 꼽는다. 신행동주의를 대표하는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는 분트의 정신물리실험실이 만들어지고 25년 뒤인 1904년에 태어났다. 스키너는 ‘조작적 조건화’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의도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한 인신공격 수준의 비난이 이어지고, 근거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는 루머의 주인공이었던 스키너의 딸 데보라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 결국 자살했다는 얘기가 떠돌았던 데보라는 소문과 달리 잘 살고 있었으며, 스키너를 훌륭한 심리학자이자 자상한 아버지라고 고백했다. 데보라의 언니 또한 행동을 개조하도록 조건이 조작된 ‘스키너의 상자’가 소문처럼 끔찍한 곳이 아니며, 스키너의 통제는 독재적 억압이 아니라 자질의 계발과 학습의 장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다. 그런데 심리 실험 외에 이처럼 심리학자 개인의 사생활이 종종 거론된다. 연구자 개인이 겪었을 갈등이나 혼돈, 혹은 신념을 조망하기 위함이겠지만, 이런 구성 덕분에 심리학에 별 관심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도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리 할로의 침팬지 실험을 소개한 4장에서는 이혼, 재혼한 아내의 죽음, 과음, 전기충격을 동반한 정신치료 등 할로의 어두운 개인사를 잔인한 동물실험과 대비시키며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조작된 기억 연구를 설명한 8장도 마찬가지다. 로프터스의 아버지는 수학에만 몰두한 냉정한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좀 더 부드러운 분이기는 했으나 우울증을 앓다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 로프터스는 어머니가 일기장을 몰래 읽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중일기를 썼다. 이런 독특한 성장 과정은 프로이트의 억압 기제에 대한 로프터스의 완강한 저항과, 있지도 않았던 일을 실제인 것처럼 회상하는 거짓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과 잘 어우러진다.

의 저자 로런 슬레이터는 이처럼 연구자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는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이론을 좀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저자의 주관적 평가가 연구자의 윤리적 책임을 덮거나 허점을 방어하는 데 적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침팬지를 어미로부터 강제로 떼어놓고 심한 고통을 줬던 실험의 비윤리성은 심리학자 해리 할로 자신의 평탄치 못했던 삶에 대한 연민과는 별개로 취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 나오는 몇 가지 실험은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다큐프라임 에 소개된 적이 있다. 또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런데 다큐 제작팀의 관점은 슬레이터의 시선과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슬레이터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알아보기 위해 고안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선택이 복종/저항으로 갈린 이유를 개인의 내면, 즉 성격에서 찾는다.

그러나 에서는 개인의 선택에 작용하는 ‘상황의 힘’을 강조한다. 성격 등 개인의 내적 특성이 아닌 외적 조건, 즉 주어진 상황에 따라 선택 양상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물론 슬레이터도 밀그램 실험에 참가했던 이들 중 권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거나 더 반항적으로 변한 사례를 들며 실험의 교육적 효과를 언급하기는 한다. 그러나 결과 분석에서 환경의 영향보다는 인간 내면의 요소를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결과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이 개인에게 돌려지거나 인간의 속성으로 결론지어지게 된다. 복종과 반항이 65 : 35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도 ‘좋은 것은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은 좋은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평가를 내린다. 저자의 권위와 노력을 존중하고, 주관적 해석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저자의 관점까지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의 선택이 과연 인간의 본질적 특성인지, 상당 부분 변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 방향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에서 제시하는 다른 사례들과 주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64년 뉴욕.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괴한의 공격을 받고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이 사건을 목격한 이는 모두 38명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는 35분간 도망치며 공격을 당하다 사망했다. 로런 슬레이터는 이 사건을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예로 해석한다. 저 상황이 진짜 위기인지 의심하면서, 아무 조처도 하지 않는 이웃을 따라한 결과 그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어리석은 모방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이타적 인간에 주목한다. 인간은 도움이 필요한 상대에게 보상과 관련 없는 즉각적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런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해내는 평범한 이웃,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원봉사의 손길이 이를 예증한다.

에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제시한 것은 필립 짐바도의 3의 법칙이다. 3의 법칙은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뜻한다. 세 명의 힘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커질 불씨가 된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 공저자

난이도 수준 중2~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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