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은의 "심리실험 톺아보기"

[2] 행복을 읽는 심리학


00happiness1.jpg » 2006년 미국 영화, 행복을 찾아서. 경제난에 허덕이던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출처/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iness, 2006)

구나 행복하기 바라며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 한다. 하지만 행복이 대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행복에 대한 우리 생각은 너무도 많고 다양하다. 사실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만 아니라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심지어 우리는 풀지 못한 시험문제를 안고 있는 것 마냥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듯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이제 행복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행복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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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와 필자들의 단골 주제였다. 현대 학자들은 대체로 행복을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한다. ‘생활 만족도(Life Satisfaction; LS)’와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 SWB)’이 그것이다.

엔(UN)이 해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행복지수’에서 행복의 개념은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보여주는 생활 만족도에 가깝다. 생활 만족도는 여러 영역에서 만족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살피는 것으로 측정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각자의 직업이나 가족, 건강, 사회적 관계 등에 대해 각각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각 영역에 대해 답한 점수들을 모두 더하거나 혹은 평균치를 구해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복지수의 생활 만족도와는 다른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개념으로 행복을 연구한다. 주관적 안녕감은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 수준을 인지적으로 평가하는 삶의 만족도에 더해서, 긍정적 정서(감정)와 부정적 정서(감정)를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더해진다.

행복을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 SWB)’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이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디너(Ed Diener)이다.[1] 주관적 안녕감을 측정하는 데에서 핵심은 ‘주관적’이라는 것인데, 이는 자기 삶의 질에 대해 개인이 스스로 판단한 것을 측정과 평가에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주관적 안녕감’ 개념의 도입 덕분에 행복은 관념적인 철학 영역에서 측정 가능한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왜 행복의 측정에서 개인적이고 주관적 평가가 중요한가? 사람들은 각자 가치관이나 경험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소득이나 학력 같은 사회경제적 지표들로 나타낼 수 있는 동일 조건에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사람들의 행복 수준은 사회경제적인 지표의 통계치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좋은 직장과 충분한 수입, 그리고 몸과 마음에 질환이 없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만족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사회 안에서 개인의 행복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지표 이외에 행복을 말해주는 제3의 측정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너 교수의 제안 이후에 행복과 관련한 연구들은 거의 이런 ‘주관적 안녕감’의 정의와 방법을 다루며,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행복 연구는 서구의 주관적 안녕감의 개념 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서구 연구자들이 행복 개념을 주관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마도 오늘날 ‘Happiness’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오이시(Shigehiro Oishi) 연구팀은 ‘행복’에 관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2] 서구에서 ‘행복’의 사전적 정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1850년부터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웹스터 영어사전의 개정판을 토대로 살펴본 것이다. 웹스터 초기 사전에서 ‘행복’은 대체로 ‘좋은 운’의 의미였다. 그러나 1961년 이후 그 사전적 정의는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고 기쁜 상태’로 변했다고 한다. 시대 흐름에서 볼 때, 행복 개념은 외부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좋은 운’이라는 정의에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정의로 변화한 것이다.

00happiness2.jpg »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행복에 대한 설문조사. 사진/ 이고은

동양과 서양의 행복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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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도 지리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까? 동서양의 행복을 비교한 연구 사례가 있다. 타이완의 푸런카톨릭대학교 루(Luo Lu) 연구팀은 동서양의 대학생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자유롭게 서술하도록 했다.[3] 실험에 참가한 97명의 서양 학생들은 행복을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라고 서술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142명의 동양 학생들은 그 누구도 행복을 삶의 목표라는 의미로 기술하지 않았다.

양 학생들은 00happiness3.jpg » 세계지니계수 1위가 덴마크, 27위가 한국. 출처/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income_equality 행복을 대체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는 데 비해, 동양 학생들은 행복을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미국을 비롯해 서양에서는 자아 성취, 즉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등으로 행복을 정의한 데 비해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기 수양 혹은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긍정적인 평가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동양 학생들이 많이 정의하는 행복의 개념인 ‘조화, 균형, 적응’과 같은 단어들을 서양 학생들의 답변에서는 비슷한 단어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인의 행복 개념도 ‘주관적 안녕감’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한국인의 행복 개념은 어떨까?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고 반복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한국인 행복 연구의 ‘조작적 정의’[4]는 무엇일까?

국내의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서구의 행복(혹은 주관적 안녕감)과 한국의 행복이 본질적으로 다를 가능성을 제안한다. 서구인은 행복을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데 비해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는 경향이 낮았다. 이는 서구식 행복인 ‘Happiness’에는 한국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런 연구들은 주관적 측면을 강조한 서구의 행복(혹은 주관적 안녕감)과 한국의 행복이 본질적으로 다를 가능성을 제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리적이고 물질적인 지원보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서적 지원을 받는 ‘관계적 지원’을 통해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5]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생각할 때, 홀로 있는 내 한 몸 그 자체보다 내가 존재 할 수 있는 주변 환경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행복은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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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한 공허한 지침들을 듣는 데에 지칠 만큼 지쳤다. 현대 경쟁사회에서는 행복해지기 위하여 썩 내키지 않는 일까지도 기꺼이 해내야 한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를 ‘피로사회’라고 하지 않았던가.[6] 행복이 그렇게도 멀리 있는 것이라면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만큼 불행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행복이 우리 곁에 있다는 흔한 조언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행복은 어쩌면 ‘생존’에 필요한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행복이 필요하다.

행복을 측정하기 위한 연구에서는 긍정적인 정서를 얼마나 느끼느냐, 혹은 부정적인 정서를 얼마나 느끼느냐 하는 것을 주로 묻는다. 여기에서 묻는 긍정적 정서가 ‘기쁨’이라면 부정적 정서는 ‘고통’이다. 인간은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기쁨을 주는 요소를 쫓고 고통을 주는 요소를 피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요소, 말하자면 기쁨을 느끼기에 필요조건으로 드는 ‘관계적 지원’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으로부터 받을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또한 외롭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외로움은 고통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에이젠버그(Naomi I. Eisenberger)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소외감을 느꼈을 때에 활성화하는 두뇌의 영역이 신체의 물리적인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하는 뇌의 영역과 일치한다.[7] 즉,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별의 고통,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소외감, 사회로부터의 고립, 이 모든 고통은 실제 생존의 위협이다.

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뜻에는 ‘사람 지향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행복은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전 세계 행복 순위를 매기는 많은 연구를 살펴보면 상위권에 드는 ‘행복한 국가들’은 주로 개인주의가 강한 문화권에 속한다. 이들이 측정하고자 하는 행복의 정의는 우리가 보기엔 한쪽으로만 치우친 다소 편협한 개념이라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기본적인 나눔과 소통,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신뢰를 이미 어느 정도 기본 바탕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개인주의 문화가 행복으로 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개념은 모두가 따뜻할 수 있는 요소가 채워져야지만 비로소 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행복이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기쁨에는 반드시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흠뻑 적셔야 한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즉 기쁨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교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바꾸어 말하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고통이 커진다. 사람들한테서 잊혀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소외감은 막막한 고통이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소외감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한 뒤 실험실의 실내 온도를 예측해보라고 했더니, 소외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방이 훨씬 더 춥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8]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울겠다는 약속, 따뜻한 관심으로 덮어줄 수 있는 마음. 우리는 그들을 향한 기억과 사랑으로 행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Happiness와 행복, 자유,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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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의 순위로 항상 최상위를 놓치지 않는 국가는 덴마크이다.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교 디너(Biswas-Diener) 연구팀은 덴마크 국민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 중의 하나로 구성원 간의 사회적 격차가 거의 없다는 점을 꼽는다.[9] 소득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 간의 격차가 가장 적은 평등한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받는 외로움과 고립을 우선 지워줄 수 있는 방안, 우리의 바람을 반영하는 행복은 바로 이런 요소들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은 저 멀리 엘도라도에 있지 않은 것이다.

속담은 그 사회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문화가 녹아 있는 결정체이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묘사할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에 수록된 우리말 속담은 총 9,063개로 집계되는데, 이 가운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직접 쓰인 속담은 놀랍게도 단 한 건도 없다.[10] 실로 놀라운 일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본디 우리 정서와 맞는 Happiness의 일대일 번역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Happiness와 가장 근접한 우리말을 좀 더 찾거나 혹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국문학자는 행복을 대체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가 ‘자유’인 것 같다고 말한다.[11] ‘스스로 말미암다.’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유란 00happiness4.jpg » 함께 울겠습니다.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2014년 5월 3일, 신소영 기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방과 그것을 통제하고 초월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자유가 행복감을 주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벽(癖)’이어야 한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칙센트 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를 몰입(Flow)이라고도 표현했다.[12] 벽이나 몰입이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주관적 안녕감을 얻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주관적 안녕감은 때로는 서로 맞서기도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책임과 배려이다. 개인의 자유가 행복일 수 있는 전제조건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배려가 바탕에 깔려 있을 경우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대인관계’나 ‘사회성’ 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를 지칭한다. 대인관계가 좋고 사회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감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 플리머스대학과 미국 버지니아대학 연구팀은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연구했다.[13]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을 홀로 오를 때와 친구와 함께 오를 때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똑같은 언덕인데도 홀로 언덕을 오르면 언덕 경사도는 친구와 함께 오를 때보다 무려 8도 이상 가팔라 보였다는 것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과 딱 어울리는 연구 결과물이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도전해야 할 과제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행복해지려면 주어진 삶의 과제들을 외롭게 홀로 도전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도전할 때 달성 가능성이 높다. 

행복의 핵심은 관계지향이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인 셈이다.

[주]

[1] Diener, E. (1984). Subjective well-being. Psychological Bulletin, 95, 542-575.

[2] Oishi, S., Graham, J., Kesebir, S., Galinha, I. C. (2013). Concepts of happiness across time and cultur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9(5), 559-577.

[3] Lu, L., Gilmour, R. (2004). Culture and conceptions of happiness: Individual oriented and social oriented SWB. Journal of Happiness Studies, 5(3), 269-291.

[4] 조작적 정의: 과학 이론에서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건 측정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사건에 근거를 두거나, 그 사건과 연계된 조작(operation)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작주의(operationalism)’이다. 그런 조작에 의한 정의를 ‘조작적 정의’라 한다.

[5] 박영신, 김의철 (2009). 심리적, 관계적, 경제적 자원: 한국인의 행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심리학회: 사회문제15(1), 95-132.

[6] 한병철. (2012).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7] Eisenberger, N. I., Lieberman, M. D., Williams, K. D. (2003).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302(5643), 290-292.

[8] Zhong, C. B., Leonardelli, G. J. (2008). Cold and Lonely Does Social Exclusion Literally Feel Cold?. Psychological Science, 19(9), 838-842.

[9] Biswas-Diener, R., Vittersø, J., Diener, E. (2010). The Danish effect: Beginning to explain high well-being in Denmark. Social indicators research, 97(2), 229-246.

[10]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On-Line] (2008). http://stdweb2.korean.go.kr/

[11] 권보드래 (2010). ‘행복’의 개념, ‘행복’의 감성: 1900~10년대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감성연구1(1), 115-141.

[12] Seligman, M. E., Csikszentmihalyi, M. (2000). Positive psychology: An introduction (Vol. 55, No. 1, p. 5).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3] Schnall, S., Harber, K. D., Stefanucci, J. K., Proffitt, D. R. (2008). Social support and the perception of geographical slant.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4(5), 1246-1255.

이고은 부산대 인지심리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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