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본 ‘윤창중 스캔들’ 발생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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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본 ‘윤창중 스캔들’ 발생 이유는

등록 : 2013.05.24 15:33
수정 : 2013.05.24 15:34

권위주의, 확증 편향, 뻔뻔한 시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심리학·철학으로 비춰본 스캔들의 내막

정말 궁금한 것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속내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을 망치려고 작정하진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 여성을 성추행까지 했던걸까? 알코올중독자일까? 성도착증일까? 사이코패스일까? 의문은 꼬리를 무는데 속 시원한 답이 없다. 집에 갇힌 윤 전 대변인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왜 그랬을까’ 묻고 또 묻고 있을 터이다. 이 심리학자, 철학자 등의 도움을 얻어 ‘윤창중 스캔들’이 발생한 이유를 찾아나섰다.

# 사도마조히즘적 쾌락, 권위주의적 성격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나치즘의 심리를 설명할 때 말한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을 적용해보자.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복종함으로써 마조히즘적(피학적) 쾌감을 얻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잔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디즘적(가학적) 쾌감을 얻는 심리 말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자의 특징은 힘에 대한 태도에서 도드라진다. 그에게는 세계가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으로만 이뤄져 있다. 가학·피학적 충동 탓에 오로지 지배나 복종만 경험할 뿐, 연대의식은 경험하지 못한다. “권위를 우러러보고 권위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권위자가 돼 남들을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에리히 프롬, ) 이러한 성격은 개성 없고 야심만 많은 출세주의자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그들은 주체적 자아가 없기 때문에 지위에 의해서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한다.

윤 전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섬기고 여성 지원요원 위에서 군림한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아닐까? 박 전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을 ‘섬겼다’는 증거는 여럿 포착된다. 칼럼니스트 시절 “국가 개조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야 할 박정희”(2010년 10월27일)라고 박 전 대통령을 찬양했고, “박근혜, 역시 담대(膽大)한 원칙주의자, 늘 ‘준비한 원칙’에 따라 언행하는구나! 이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중심을 잡게 됐다”(2011년 12월26일)라고 썼다. 박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대변인 신분으로 처음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라는 잡지를 봉투째 들고 입장했다. 5월11일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해명할 때도 “박근혜 대통령님께 거듭 용서를 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동시에 여성 지원요원 위에서 ‘군림’했음도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여자 가이드를 단호하게 질책했다. 너무나 매끄럽지 못하게 나를 가이드했고 일정을 모르고 차량을 대기시키지 못하는 잘못을 할 때마다 내가 단호하게 꾸짖었다. 도대체 누가 가이드이고 누가 이 가이드를 받아야 하느냐, 여러 차례 질책을 했다.” 여성 지원요원의 공식 지위는 인턴인데도 윤 전 대변인은 ‘가이드’라는 호칭을 고집한다.

# 자기확증편향, 특권 의식

‘나는 특별하니까’라는 특권 의식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권 의식이 과도해지면 조직 내에서 부정을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최대한 많이’ 요구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것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권 의식으로 자기확증편향(Self-serving Bias)에 빠지는 경향이 짙어진다. 부정적 결과는 주변 사람들과 상황의 탓으로 돌리고 성공적 결과는 자신의 내적 역량 덕분이라고 믿는 태도다. 보통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지닌 경우가 많다.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성추행 의혹으로 ‘줄행랑’을 쳤지만 그는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도덕성과 상식으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돌이켜보건대 미국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며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가 문화적 차이로 오해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 홀로 귀국도 상관 탓으로 돌렸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선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라고 말했다. 홍보수석은 직책상 상관이다. 그 지시를 받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좌석표를 샀다.” 손가방 하나만 들고 귀국한 윤 전 대변인은 인천공항에서 항공권 마일리지를 직접 요청해 적립했다.

# 자신은 상관없지만 남들은 지켜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권력자는 평범한 사람보다 나쁜 짓을 저지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네덜란드 틸뷔르흐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에서 2010년에 한 실험에서 그랬다. 실험에 참가한 한 그룹엔 총리 역할을, 다른 그룹엔 일반 공무원 역할을 요청했다. 총리는 공무원의 상사였다. 이후 연구자들은 △약속에 늦으면 과속을 해도 되는지 △여가시간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세금 신고를 안 해도 되는지 △도난 자전거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가져도 되는지 등을 물었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했다. 총리를 맡은 참가자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남들은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반면 공무원은 자신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다른 실험도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살아오면서 많은 권력을 가졌던 상황, 아니면 그 반대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런 뒤 회삿돈으로 출장을 가면서 경비를 부풀리는 일에 대해 도덕적 평가를 해보라고 했다. 권력을 상상한 그룹이 가장 강한 톤으로 이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 그룹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에 비례해 복권을 받는 게임에서는 숫자를 부풀려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감이 충만해지면 남에겐 엄격해지고 자신에겐 관대해지는 속성이 심해진다. 왜 그럴까? 권력자는 규칙과 도덕적 관습으로 정의되는 일종의 체제를 통해 그 지위에 올랐다. 따라서 이런 규정과 관습을 충실히, 때로는 고지식할 정도로 지키려 한다. 권력자 중에서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규정을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권력자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다른 이들이 그 규정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권한도 함께 획득했기 때문이다. 규정이란 모든 사람이 어길 경우 사회질서가 붕괴되지만, 단 한 사람이 어길 때는 큰 문제없다. 그 한 사람이 권력자 자신이라면 괜찮다고 정당화한다.

# 생각만으로도 만족하는 ‘선행 도취’

우리는 착한 일을 하면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면 자신의 충동을 신뢰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나쁜 일을 할 자격이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를 ‘도덕적 허용’이라고 심리학에선 부른다. 예를 들면 이렇다. 너그럽게 살아온 시절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과거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기부금을 60% 적게 낸다고 한다. 한 연구는 참가자들에게 노숙인 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환경을 개선하는 일 중 어느 쪽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런데 특정 봉사활동에 실제로 참여하겠다고 서명한 것도 아닌데, 그저 선호하는 봉사활동을 생각만 했는데도 값비싼 청바지를 사고 싶은 욕구가 증가했다.

도덕적 허용 효과를 생각해보면 성직자나 정치인, 검사가 심각한 도덕적 잘못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이 고결하다고 생각하거나 지위 때문에 자신의 미덕을 지속적으로 떠올리는 경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의 사악함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유혹에 굴복한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를 적용해보면 이렇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자신을 ‘착하다’고, ‘훌륭하다’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여성 지원요원과의 술자리, 성추행이라는 나쁜 일을 해도 괜찮다는 자격을 부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착한 일을 실제로 행하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그런 생각만 해도 충동에 굴복하는 마음이 우리에겐 생긴다. 결국 자신의 발자취를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되뇌는 사람은 반대로 나쁜 짓을 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윤 전 대변인의 마지막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양심과 도덕성,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갖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

# 이명박 그리고 ‘뻔뻔시대’의 개막

이명박 정부가 탄생시킨 ‘뻔뻔함의 체제’가 확산하는 것은 아닐까? 철학자 이진경은 책 에서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권력을 이용하는 뻔뻔함이 위선을 대신해 권력 행사의 전면에 드러난다”고 진단했다. 뻔뻔한 시대의 사례를 보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 가운데 이른바 ‘종합비리 5종 세트’(병역 비리, 논문 표절, 탈세, 부동산 투기, 자녀 이중국적)를 갖추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그런 사실이 드러나도 “그 정도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맞받아치는 경우다. “어떤 비판에도 귀를 틀어막고 어떤 이견이나 반론도 무시하며 오직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무슨 수단을 써서든 밀어붙여 관철하는 것, 해놓고 나면 다들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 그것이다.”(이진경)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오직 진실만을 밝힌다”며 “성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윤창중 이름 세 글자를 걸고 맹세하는 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속속 확인됐다. 술은 30분 정도 마신 게 아니라 2시간 이어졌고, “너와 나는 잘 어울린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아 외롭다” 등 작업 멘트를 날렸음이 드러났다.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과 달리, 새벽 4시 술에 취한 듯한 그의 모습을 동행 기자들이 목격했다고도 한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경고하기도 했다. “그 시간대에 나를 본 것이 확실한가? (아니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방으로 부르지 않았다” “속옷을 입었다”고 발표했지만 4~5차례 전화를 걸고 알몸 차림으로 여성 지원요원을 만나는 ‘2차 성추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윤 전 대변인은 피해자에게 정식 사과도 하지 않았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만 전했을 뿐이다.

더 큰 위험은 전염성이다. 뻔뻔함이 고위 공직자를 뒤덮으면 공적 체제로 번져나가고 대중의 수준으로 확산되면 사회 전체가 변화하게 된다. 이미 2012년 8월 는 제목의 자기계발서가 나왔다. “뻔뻔함이 정의를 이긴다. 요령껏 속셈을 챙긴 자만이 혜택을 본다. 성공한 사람, 잘사는 사람들은 뻔뻔한 처세가다. 그대도 그들처럼 제 잇속을 챙기는 것이 최선책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 문헌: 이진경 , 에리히 프롬 , 아론 제임스 , 켈리 맥고니걸 , 정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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