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피·카이로스 ‘저급한’ 도발의 심리학

▲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과의 최종전에서 ‘주먹감자’를 날리는 도발을 자행했다.(SBS 화면캡처)
최근 전북과 광저우의 AFC 챔피언스리그 대결을 앞두고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광저우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비매너 행태였다.

이탈리아 출신 리피 감독은 최근 전북전을 앞두고 약속된 기자회견에 무단 불참해 도마에 올랐다. 전북과 같은 조에 편성됐던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정작 리피 감독은 몇 시간 뒤 중국 언론들과의 별도 인터뷰에는 응하며 “세계 어디를 가도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하는 곳은 없다”며 “한국에만 오면 늘 문제가 발생한다”고 전북 구단과 한국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다. 리피 감독의 발언은 중국 언론에도 자극적으로 보도되어 ‘혐한 여론’을 부추겼고, 부화뇌동한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에 대해 악의적 비난을 퍼부었다.

리피 감독의 모습을 보며 국내 팬들에게 떠오르는 인물은 이란 카이로스 케이로스 감독이다. 포르투갈 출신 케이로스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전을 앞두고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을 비방하는 인터뷰와 티셔츠로 도발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최종전에서 한국을 제압하고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은 뒤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는 도발을 자행했다. 이란 선수들도 한국팬들을 자극하는 세리머니로 비매너의 끝판을 보여줬다. 리피와 케이로스의 공통점은 한국과의 악연과 함께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는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태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부터 의식적인 도발에 가깝다.

유럽축구에서는 상대에 대한 도발을 기싸움이나 심리전 형태로 이용하는 문화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끊임없이 상대를 자극하고 깎아내리면서 흔들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수법이다. 지금은 은퇴한 맨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이나, 첼시 조세 무리뉴 감독 등은 이러한 설전과 언론플레이의 대가로 꼽힌다.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팀이나 감독에게 노골적으로 도발했다.

한때 한국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심리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1998년,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과의 대결을 앞두고 일부러 기싸움을 걸기 위해 정해진 팀 훈련 시간을 넘겨가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명백한 비매너 행위였지만 당시 이런 식의 기싸움에 한국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그 장면에서 승리를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훗날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사령탑에 올라서도 심리전을 적극 활용했다.

안정환, 이천수, 홍명보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공개적인 언론플레이로 길들이는가하면, 월드컵에서는 당시 붉은 악마 응원단에게 불리한 심판 판정이 나올 경우 야유까지 미리 주문할 만큼 홈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상대팀이었을 때 얄미웠지만 우리 편이었을 때는 한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선후배 위계질서와 ‘한 식구’ 문화가 강한 한국축구는 이런 식의 과도한 기싸움이나 도발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점잖은 한국 감독들이 국제무대에서 종종 골탕을 먹기 쉬운 것도 이런 경우다.

요즘은 유럽축구도 많이 변해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개석상이나 기싸움이나 도발도 대체로 가급적 선을 넘지 않는다. ‘최후의 독설가‘로 유명한 무리뉴 감독조차 먼저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자극적인 발언을 삼간다.

리피나 케이로스의 행태는 유럽축구에서도 저급한 쪽에 속한다. 오히려 유럽에서 이런 식의 행태를 보였다면, 해당 연맹 측의 징계는 물론 거센 비난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일부 유럽 출신 감독들이 이런 수준 낮은 언행을 유독 자국을 벗어난 해외 무대에서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그만큼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축구 자체를 은근히 경시하는 마인드가 깔려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몇몇 몰상식한 감독들의 행태가 자신은 물론 아시아 축구의 품격까지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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