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육아전략이 있을까

우리는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가지만 대체 왜 그런 말,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모르고 살아간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당연한 듯 여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하는 게 정말 아는 게 맞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접근은 시도조차 않는다.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오자와 마키코 저)」라는 책은 이런 우리네 습성에 반문하듯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 당연시했던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당연히 '심리학은 아이들 편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라는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원래 갖고 있던 프레임에 한 발짝 물러서 ‘왜 그런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탁틴내일 탁틴맘 교육장에서 열린 ‘엄마 지혜 그리고 돌봄’ 인문강좌에서 박동섭 교수가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고 잘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원하는데, 기본적인 물음은 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탁틴내일 탁틴맘 교육장에서 열린 ‘엄마 지혜 그리고 돌봄’ 인문강좌에서 박동섭 교수가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고 잘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원하는데, 기본적인 물음은 '인간의 존재, 아이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지난 14일 오후 탁틴내일(소장 김복남)이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탁틴내일 탁틴맘 교육장에서 ‘엄마 지혜 그리고 돌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한 인문강좌. 이날 강사로 나선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를 역저한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박동섭 교수는 “오늘 강의는 아이들을 위한 육아 매뉴얼 강의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고 잘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원하는데, 기본적인 물음은 '인간의 존재, 아이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는 그런 혼란스러운 물음을 길게 궁리하면서 가져갈 수 있는 인문학의 기본을 보여 준다"고 말문을 열었다.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육아지침서대로 아이를 키우고, 자기개발서대로 자신을 개발하는 데에 익숙한 우리들은 그런 매뉴얼에 누구든지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서울시 학교체벌 매뉴얼을 예로 들어보자. 학교 내 폭력은 너무 많은데 술 마시면 측정하고, 염색한 학생은 두피 상담하는 등의 간단한 솔루션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며 “이런 매뉴얼은 마법처럼 모든 상황과 장면에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인간이지에 대한 관심이 먼저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뭔가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배우고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배우려는 의도가 없어도 저절로 배워지고 알게 된다”며 매뉴얼이 아닌, 자연스러운 앎과 배움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박 교수는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일단 받아들여 자신 안에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본 적 없는 어휘꾸러미 이미지를 무리해서 쑤셔 넣는 프로세스”라며 “만약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에 대한 의문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안다는 것으로 인해) 지적파탄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태아는 태내에선 엄마로부터 탯줄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지만 산도를 빠져나와선 호흡시스템을 폐호흡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다른 호흡시스템 전환 사이에서 태아는 그 어느 쪽 시스템에도 의존하지 않는 산소결핍상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처럼 '심리학은 아이들 편이다'는 지적프레임워크에서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라는 지적프레임워크로 옮아가는 과도기는 구조적으로 태아의 호흡시스템 전환과 비슷하다. 즉, 과도기에는 그 어느 쪽 시스템에도 의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산소결핍상태가 반드시 끼어있다. 늘 좋은 단어라 생각했던 '발달'이라는 말을 쓰지 말도록 하는 것도 산소결핍상태에 빠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발달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걸 쓰지 말자고 한다면 산소결핍상태, 즉 지적무산소상태에 빠진다는 것.

 

박 교수는 “이럴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고 경험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적으로 전문가에게 매달려 스스로 호흡하는 것을 포기한다. 또한 새로운 지적프레임을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세하기도 한다”며 “산소결핍상태에 대처하는 방식 인식의 균열이 야기하는 혼란스러움을 견뎌내고 그 혼란스러움을 곧바로 해소하기보단 길게 끌고 갈 궁리를 해, 나아가 그 상태를 즐기는 것, 혼자서 호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저자의 의도”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이런 산소결핍상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지적폐활량인데 이는 인간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왜 사회가 만든 어휘에, 습관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걸까? 박 교수는 “우리의 눈은 뇌의 눈이면서 전통의 눈으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게 된다. 우리가 보이는 현실에 지각을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틀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뚱뚱한 걸 부의 상징으로 보던 시대에는 비만이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비만이란 말은 어떤 신체나 행위대상으로 다뤄지고 일상 내 관심대상이 돼 비만퇴치전문기관도 생긴다. 수많은 것들이 비만의 실체를 보이기 위해 작동 된다”며 “이에 대해 우리는 ‘언제부터 저랬지’라는 생각을 갖고 많은 것에 놀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평소에 놀라는 사람은 안 놀라고 평소에 안 놀라는 사람은 놀란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는다는 건 지성이 둔감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그는 “놀라지 않는 사람은 자신 앞에 있는 현실이 옛날에도 지금도 미래도 그럴 거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현실이 어떤 역사적 조건하에서 개입에 의해 그 현실이 됐는지 찾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놀라는 사람은 이 현실과 다른 현실을 살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 즉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교양을 갖는다는 것, 인문학을 한다는 건 놀라는 능력을 갖고 그 능력을 함량시키는 것”이라며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대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놀라는 일을 많이 당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상하는 셈”이라며 놀람의 중요성을 전했다.

 

결국 육아도 어떤 것도 구조적으로 획일적일 수도, 수미일관적일 수도 없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타당한 육아전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 대체 인문학적으로 봤을 때의 육아전략은 무엇인가?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제시했다. ‘내가 이렇게 하시오라고 하는 것에 납득한다면 실천하지 말아라. 내가 이렇게 하시오라고 한 것에 납득하지 않는다면 실천하라’. 즉, 남의 말, 남이 짜놓은 매뉴얼에 휘둘릴 필요 없이 그냥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한편 (사)탁틴내일은 지난 5월부터 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인문서적 저자들을 초청해 릴레이로 ‘엄마 지혜 그리고 돌봄’ 인문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18일 마지막 인문강의에는 김광선 슈타이너교육예술연구소 소장이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를 주제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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