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남자에게] 러브호텔의 문화심리학?

일본에 러브호텔이 생긴 것은
기후와 독특한 가옥구조 때문…
그렇다면 한국의 러브호텔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일본 나라현에는 비가 자주 온다. 지난주에도 내내 비가 왔다. 일본 아줌마들은 비가 오는데도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탄다. 아주 잘 탄다. 나도 한 손으로 우산 들고 자전거 타기를 시도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아주 요란하게 나뒹굴었다. 옷이 다 젖고, 무릎이 너무 아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걱정하는 표정을 보며 여유롭게 웃으며 일어서야 했다. 이 낯선 곳에서 혼자 절뚝거리며 비에 젖어 자전거를 끌고 오자니 세상에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다.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항상 혼자였던 학창시절, 소풍 가서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을 혼자 먹었을 때 이후로 가장 처참한 기분이었다.

방에 앉아 창밖의 비를 보고 있으려니 러브호텔 불빛이 보인다. 어째 러브호텔 이름도 특이하다. ‘공부방’이다. 하긴 그것도 공부해야 한다. 제대로 학습이 안 되어 있으니 다들 뭔가 불만족인 거다. 김이 서린 창문으로 보이는 러브호텔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시작된 궁상맞은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러브호텔의 문화심리학적 해석에까지 발전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 러브호텔이 생긴 이유는 순전히 비 때문이라는 거다. 물론 내 생각이다.

일본열도의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가옥 구조는 주로 여름을 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은 그저 견디면 된다는 문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한겨울에 치마를 입히고, 짧은 바지를 입혀 추위를 견디는 훈련을 시킨다. 정말 견디기 힘든 추위에는 옷을 두껍게 껴입거나 불을 더 때면 된다. 그러나 습하고 숨이 헉헉 막히는 여름을 견디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옷을 다 벗고 나면 더는 견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여름은 아주 덥고 습하다. 그리고 참 길다. 따라서 겨울을 잘 나는 것보다 여름을 튼튼하게 잘 버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환기가 조금만 안 되어도 바로 곰팡이가 핀다. 내가 묵고 있는 방도 아침이면 창문에 온통 물기다. 바로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가옥에는 다다미와 같은 시원한 바닥과 얇은 벽, 그리고 통풍이 잘 되는 창문 등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일본 집들은 언뜻 보기에도 그토록 가볍게 느껴지는 거다.

일본의 벽이나 창이 유난히 얇고 가볍기 때문에 생기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소리다. 바로 옆방에서 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내 옆방에 사는 친구의 전화 소리, 밥 먹는 소리, 심지어는 가끔 방귀 소리까지 들린다. 도무지 ‘프라이버시’라고는 없다. 그래서 생긴 게 바로 러브호텔이라는 게 내 가설이다. 집에서는 도무지 맘 놓고 뭘 해볼 수가 없는 까닭이다. 남들 눈치 보인다고 그 숭고한 행위를 서로 입에 재갈 물리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뮤트(mute) 성행위’는 오히려 고통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소리 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생긴 거다. 따라서 일본의 러브호텔을 그리 심한 의혹의 눈길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한국의 러브호텔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의 경우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가는 독특한 가옥구조 때문이라면, 한국의 러브호텔은 도대체 어떤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그토록 성황인 것일까? 한국의 가옥은 일본에 비해 소리를 훨씬 더 잘 차단하게 되어 있다. 온돌이나 두꺼운 벽을 치는 방식으로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단 아쉬운 대로 이렇게 설명하자. 한국인들이 성행위 때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게 봤으면 좋겠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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