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명 교수 "日위안부 문제 명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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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문제는 종교 소관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중심 과제다.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명예교수는 평생 선악의 문제와 정면으로 씨름한 사회심리학의 태두다. [사진 www.stanford.edu]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묻지마’ 살인, 성범죄, 정치권의 검은돈 거래,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국수주의는 공분을 일으킨다.
‘상황주의자(situationist)’라 불리는 심리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만 미워해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그들은 악행이나 범죄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처한 상황·환경·사회 체제에서 찾는다. ‘성향주의자(dispositionist)’들은 정반대 주장을 편다. 그들은 행동의 원인을 유전자·성격·가치관 같은 개인적인 성향에서 발견한다.

심리학계의 ‘폴 새뮤얼슨’
스탠퍼드대 심리학과의 필립 짐바르도(79) 명예교수는 대표적인 상황주의 사회심리학자다. 그는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SPE)’을 통해 누구든 상황에 따라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익명성·집단압력·무료함으로 구성된 감옥 상황이 문제였다. SPE에 대해 상술한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효과(2007)를 바탕으로 ‘실험(The Experiment)’(2010)이라는 영화도 나왔다. 짐바르도 교수에 따르면 ‘루시퍼 효과’의 반대는 ‘영웅 효과’다. 상황에 따라 인간은 천사도 되고 영웅도 되는 것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심리학계의 폴 새뮤얼슨’이다. 수줍음·설득·최면·시간 등 20개 토픽에 대해 논문 400여 편, 단행본 50여 권을 집필했다. 2002년 미국 심리학회(APA) 회장을 지낸 짐바르도 교수는 올해 APA로부터 ‘평생업적상’을 받았다.
심리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으며 심리학자는 세계 현안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짐바르도 교수를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좋은 사회, 좋은 나라의 조건은?
“학교·회사·국가를 포함해 모든 체제(system)는 ‘정직성의 문화(culture of integrity)’를 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부패 문화’ ‘공범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나쁜 짓으로 돈을 벌고 악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 ‘정직성의 문화’는 지도자들에게 최대한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지도자들은 잘못을 폭로하는 ‘고발자(whistleblower)’에게 벌이 아니라 상을 내려야 한다. 고발자는 언론매체에 앞서 우두머리에게 잘못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적은 고발자가 아니라 부패다. 부패에서 냉소주의가 싹튼다. 성공하려면 ‘무엇을 할 줄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힘 있는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해진다. 국가에 불신이 만연했을 때 국민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부패가 전 세계의 ‘공공의 적’인 것으로 볼 때 사람이란 존재는 선보다 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인간의 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제공한다. 사람은 선과 악의 가능성, 악당이 되거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것은 사회와 교육이다. 모든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순간에 선량하다. 나쁜 사람도 영웅도 상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나쁜 사람들은 ‘전문적인’ 악인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조직과 돈으로 일반 대중, 특히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반면 영웅들은 조직도 없고 자원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영웅적 상상력 프로젝트(Heroic Imagination Project)’라는 비영리 단체를 결성했다. ‘악행 전문가’들의 수법에 맞설 수 있는 심리 전술을 가르친다.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 중·고교와 대학교 학생들, 회사원들이 영웅이 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이 운동이 국제화돼 한국에도 진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떤 사람이 영웅인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영웅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웅적 행동이 비범·특출한 것이다. 영웅이 된다는 것은 유명인이 된다는 게 아니다. 영웅은 다른 사람들을 돕고 도덕적인 목적·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위험·대가를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한다. 회사의 문제점을 거론해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될 수도 있다. 영웅 프로젝트는 잠재적 영웅들이 지닌 개인적 ‘측은지심(compassion)’을 시민적 행동(civic action)으로 전환한다. 내 연구를 포함해 학계의 연구 성과가 담긴 프로젝트다. ‘오피니언’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악에 대항하고 영웅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 훈련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이 변화의 주역이 되어 그들 가정·공동체·회사,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삶을 향상시킨다. 중앙SUNDAY 독자들이 우리 웹사이트(heroicimagination.org)를 방문해 살펴보기 바란다.”

직장 내 왕따로 이윤의 10% 줄어
-미국은 불링(약자 괴롭히기·bullying)’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오바마 대통령은 불링이 국가적 문제라고 선포했다. 학교와 인터넷에서 괴롭힘을 당한 학생들의 자살이 정부가 나선 배경이다. 약자 괴롭히기의 원인·결과·예방 연구를 위한 연구비도 넉넉하게 지원된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약자 괴롭히기 때문에 적어도 이윤의 10%가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생산성 저하, 병가, 이직 때문이다. 약자 괴롭히기는 피해자들이 장기간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것도 문제지만 방관자들을 양산한다는 문제가 있다. 약자 괴롭히기를 목격하고도 못 본 척한 학생·직장인들은 평생 수치심에 시달리게 된다. 약자 괴롭히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작동한다. 체제적·상황적·성향적 차원이다.”

-국수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국가 간 갈등을 촉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토분쟁의 원인은 개인적 악이 아니라 체제적 악이다. 체제적 악에 빠지면 도덕적인 실패를 인정할 능력, 용서를 구할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고백해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세계인들이 보기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잘잘못은 너무나 분명하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성적 쾌락을 위해 한국 여성을 노예로 만들었다. 수십 년 전 일이다. 지금 세대는 전시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는 한편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심리학의 추세는?
“문화 심리학을 주목하고 있다. 나도 수줍음에 대한 문화 심리학적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미국에선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과 아시아 학생들의 수줍음 정도가 제일 높다. 유대계 학생들이 가장 낮다. 학부모·교사·학생들을 인터뷰한 결과 적어도 중국과 일본에서 수줍음이 겸손함, 신중함, 어른에 대한 공경을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일본에서는 실패에 대한 ‘처벌’이 수줍음을 낳는다.

중국·일본 학생들이 뭔가를 시도하다 실패하면 그들 탓이다. 그들이 성공하면 교사·학부모 등 다른 사람들이 공을 인정받는다. 이스라엘에서는 반대다. 학생이 실패하면 그 학생이 아니라 교사·학부모 등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것으로 본다. 학생이 성공하면 그 학생이 잘한 것이라고 인정된다. 전 세계 유대인 학생들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일을 감행할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은 앞장서도 손해 볼 게 없다. 이처럼 문화적 관습에 따라 수줍은 사람들이 받는 처우가 다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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