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215)

Black or white는 유명한 골프웨어 브랜드의 짝퉁 같은 느낌이 들지만 오늘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퍼커슨시 흑인 사살사건의 불기소 처분으로 눌려왔던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다. 그러던 중 오하이오주에서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열두 살 흑인 소년이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의 내용은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아이를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고하였다. 그러나 신고를 받는 경찰의 질문은 “Black or white?”였다. 신고자는 “Black”이라고 답하였고 경찰차는 현장에 도착하여서 2초 만에 사살하였다. 경찰은 장난감 총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하였다. 미국에서는 판매되는 장난감 총의 총구는 다른 색을 칠하여 진짜 총과 구별한다. 물론 어두워서 잘 안보였을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사연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미 경찰이 신고자에게 “Black or White”를 묻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게 중요한 것과 신고자의 중요성이 달랐다. 신고자는 장난감 총일 가능성을 설명하였지만 경찰은 “Black or white”만 물어보았다. Black이라고 듣는 순간 이미 선입견에서 진짜 총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그 경찰이 처음부터 인종차별주의자였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처음에는 인종 차별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자가 아니었는데 점차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면서 그렇게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모든 직종이 그러하듯이 오래 종사할수록 안 좋은 경험과 추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재유산으로 세네갈의 고래섬이 등재되어 있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와는 의미가 다르다. 과거에 가장 큰 노예무역 시장이었기 때문에 인류역사상 가장 아픈 추억의 장소로 지정되었다. 지금 아프리카는 빈곤에서 허덕이며 심지어 에볼라바이러스가 창궐하여도 경제력이 없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계의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역사적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지금 선진국들의 이기심과 추악한 탐욕이 있다. 15세기에 서양 강대국들은 아프리카를 침략하여 식민통치를 하면서 근 400년 동안 인간 혈육장사인 노예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장기간에 걸쳐 빈곤에 시달리고 낙후된 환경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노예무역을 시행하였다. 더불어 노예무역의 중심에는 수요자로서의 미국이 있었다. 유럽의 노예상들은 일차적으로 값싼 물건이나 무기를 배에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 노예와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이차적으로 흑인 노예를 면화, 담배와 바꾸고 유럽으로 돌아와 돈으로 바꾸었다. 결국 미국이라는 최대 수요자가 있었기 때문에 노예무역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400년 동안 팔려갔던 흑인 노예들의 후예가 지금 미국의 Black이다. 그리고 그 노예상들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였다. 피해지역인 아프리카의 세네갈, 가나, 탄지니아 등에서 그들이 처음에는 군대로 마을을 습격하여 노약자는 죽이고 청장년만 강제로 끌고 오다가 나중에는 부락과 부락을 이간질하여 싸움을 시키고는 진 편을 사들이는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결국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남아서 아프리카는 아직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서양 강대국의 눈부신 발전의 밑에는 아프리카 노동력의 강탈과 흑인들의 고통과 눈물이 있었다. 1502년 노예무역이 시작된 지 5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이다. 하지만 Black이란 단어에 12살의 흑인 소년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사살되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미국 흑인의 역사는 Black라는 단어에 녹아들어가 있다. 이제는 오바마도 사살된 12살의 흑인 소년도 역사가 되어 Black이란 단어에 녹아들어 갔다. 마치 우리의 역사가 ‘한’이라는 글자에 녹아들듯이 말이다.

지금은 Black이 가슴 아픈 단어이지만 역사 속에서 언젠가는 빛나는 단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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