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의 이슈프리즘> 낙천자 무소속 출마의 심리학…배신에 해코지라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작업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공천 탈락을 둘러싼 ‘내홍’은 끝날지 몰라도, 이제는 탈당한 옛 식구와 남남으로서 대립해야 하는 더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중진 낙천자를 중심으로 ‘대승적인 승복과 백의종군’ 선언이 있었지만, 당의 공천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려는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예비등록한 후보를 합하면 낙천자의 무소속 출마는 불출마 선언의 3~4배는 족히 넘는다. 공천 탈락한 무소속 출마자는 전체 무소속 출마자의 70%가 넘는다. 총선은 아니지만 과거 지방선거 때의 예를 보면 무소속 후보 2800여명 중 2400여명이 공천 탈락자였다는 통계도 있다.

▶낙천자 무소속 단일화 논의도= 여당에서는 서울 중랑갑의 유정현, 인천 남동갑의 이윤성, 춘천의 허천, 경북 고령ㆍ성주ㆍ칠곡의 석호익 후보, 울산 남갑의 최병국 의원, 수원 권선을의 정미경 의원 등이 그랬고, 야당에서는 광주 서갑의 조영택, 북을의 김재균 의원과 전북 정읍의 유성엽, 완산갑의 신건, 전남 나주ㆍ화순의 최인기 후보 등이 무소속 출마 강행의사를 밝혔다.

서울 영등포갑의 전여옥 의원은 신생 보수정당 ‘국민생각’으로 옮겼고,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에 양보한 광주 서을에서는 공천 기회를 빼앗긴 민주당 후보끼리 ‘무소속 후보단일화’ 논의에 들어가는 이색 풍경까지 연출됐다.

낙천 후 불출마 선언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속뜻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겉으로 표현된 수사로 미뤄 가장 많은 유형은 분노다.

나아가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의 위력을 배신한 정당의 패배로 유도하려는 심리 ▷내가 나가면 반드시 이길 것 같은 자신감 ▷예상했던 탈락인 만큼 당선이 안돼도 얼굴을 알리겠다는 전략 ▷주군이 날 미워해도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애정’의 표현 그리고 승리 후 복당 다짐을 통한 동정표 끌기 등의 유형으로 나뉜다. 명예회복을 도모하는 후보도 있었다. 물론 애향심과 국가발전의 밀알이 되겠다는 다짐은 기본이다.

▶분노의 역류냐, 자신감이냐= 신건 의원은 “정든 민주당을 떠나…다시 전주를 위해…”라는 표현을 통해 애당심과 애향심을 표현했다.

그는 “국민경선을 배제한 채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자기부정이자 무법적 횡포”라면서 현 지도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강원 속초ㆍ양양 선거구 새누리당 낙천자인 손문영 전 현대건설 전무는 “구시대 정치인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탈당 및 무소속 완주를 선언했다.

손 후보의 등장으로 새누리당은 이곳을 경합지역에서 경합열세지역으로 재분류했다. 대구의 배영식 후보도, 고령의 이인기 후보도 공천 불만을 털어놨다. 낙천을 예상한 상황에서 얼굴 알리기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지속하는 신인은 꽤 많다.

1996년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공천에서 탈락한 최락도 의원은 선거전 사법처리 당한 데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여성 비하 발언’ 논란으로 최근 공천을 반납한 석호익 후보 역시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 지역구 주민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소속 당선가능성은 5% 바늘구멍, 공천자 당선률의 1/10~1/5 수준= 그렇다면 무소속 출마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탈당 후 무소속 출마자의 당선 가능성은 전체 인원에 비해 5%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상 첫 보수에서 개혁 성향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양당의 팽팽한 대결 속에 치러진 16대 총선과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에서는 낙천자의 무소속 당선 사례는 미미했다. 14대 국회에서도 여당 현역 낙천자 중 13명이 나섰다가 일제히 고배를 마셨다.

그나마 YS 집권 후 민주계가 민정ㆍ공화계를 ‘밀어내기’하던 1996년의 15대 국회에서는 16명이 당선돼 4%가량의 당선률을 보였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친이-친박 간 치열한 공천다툼으로 희생양이 많았던 18대 총선에서는 낙천자 무소속 후보가 20명 당선돼 5%대의 당선률을 기록했다.

무소속 당선가능성은 30~40%에 달하는 공천자 당선률에 비해 극히 낮은 것이다.

▶사진설명=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낙천자의 무소속 출마 문제로 고심하는 가운데, 19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장 앞에 서울 광진갑 지역 일부 당원들이 공천방식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m.com

▶생환땐 몸값 치솟아= 바늘구멍을 뚫어서인지 무소속 당선자가 생환하면 그 몸값과 스타성은 치솟는다. 18대 총선 때 박지원ㆍ홍사덕이 그랬고, 16대 총선의 이강래 의원이 그랬다. 박 의원은 원내대표와 대표에까지 올랐고, 홍 의원은 집권세력인 친박계 무게중심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영호남 낙천자의 무소속 출마는 특정 정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표갈림에 의해 상대 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빚었다는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그만큼 가치는 높지 않다. 15대와 18대에 각각 16명과 20명이 살아돌아왔지만 대부분 영호남에 집중돼 있었다. 일부 명망가를 제외하곤 일반적인 몸값만이 매겨졌다. 무소속 당선 후 당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15대 국회 때 낙천 후 무소속 출마했던 민정계 의원은 당선되고도 낭인 생활을 해야 했고, 원유철 등 중부지역 의원만 높은 몸값으로 원래 소속 정당에서 영입했다. 이인제 의원은 생환하고도 혼자 유유자적했다.

하지만 충청ㆍ경기ㆍ강원에서 무소속 출마로 생환하면 그 가치는 더 뛴다. 14대 총선에서 강원도 삼척의 김정남 의원은 민자당ㆍ국민당 공천에서 모두 배제된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다음 일약 국민당 원내총무에 올랐다. 18대의 한선교 의원은 경기도에서 생환해 친박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승복한 중진은 ‘사후 보장’ 받기도= 이 같은 결과로 미뤄 낙천 후 무소속 출마는 하나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요소를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할 때에는 배신감이 매우 강했거나, 자신감이 넘쳤거나,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거나, 세 가지 중 하나로 집약된다.

공천에서 자의든 타의든 배제되고도 흔쾌히 받아들인 중진은 뭔가 일을 맡았다.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인재등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낙하산이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다. 낙하산도 성공한 경우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읍참마속의 참모에 대한 배려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그랬다. 이번에도 나경원 의원은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고, 김무성ㆍ진수희 의원이 운명을 받아들였다.

▶“정치인도 인생 2모작 준비해야”= 낙천자의 무소속 출마 강행이 보복인지, 교두보인지, 생환을 통한 몸값 올리기인지는 20여일 후 판가름난다. 승복한 자의 앞날도 주목된다. 그러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 기류에 비춰 상황이 예전같지는 않다.

은퇴 정치인들은 “부당한 것에 대한 저항, 자신의 숙명에 대한 수용 두가지 생각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은데,낙천하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질때가 많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정치가 자기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며, 정치란 모험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을때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가지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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