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지

착각에 관한 심리학 이론서
축구와 영화 등 쉬운 소재로
인간 본성의 하나임을 설명

가끔은 제정신/허태균 지음/쌤앤파커스·1만4000원

#1. 대학 강의실. 수업 중에 예쁜 여학생이 고개를 돌려 한 남학생을 쳐다본다. 어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여학생이 쳐다본 횟수를 세어보니 13번. 자신만만해진 남학생,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 말고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여기에서 질문 하나. 그 남학생은 어떻게 자기를 쳐다보는 걸 알았을까?

#2.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 뜻밖의 시주를 받은 스님. 감사의 뜻으로 선비의 손금을 봐줬다. 그런데 선비는 오늘 죽을 운명. “특히 밥그릇을 조심하시오.” 스님의 말에 깜짝 놀란 선비, 밥그릇을 방문가에 들여놓고 한 발자국도 안 나왔다. 그러나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건, 종일 방에 틀어박힌 남편에게 화딱지 난 아내가 벌컥 문을 여는 바람에 뒤에서 날아온 밥그릇. 선비가 스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심리학 이론’을 담고 있다. 첫 이야기는 ‘모든 심리적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 여학생, 수업 내내 자신을 바라보는 남학생이 무서워 쳐다봤을 뿐이다. 선비와 밥그릇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기대(예언)를 하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심리학의 ‘자기 충족적 예언’ 이론을 말한다. 남의 말을 의식한 탓에 실제 ‘말하는 대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허태균 고려대 교수의 은 이처럼 심리학 이론을 풀어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저지르는 ‘착각’을 이야기한다. “피실험자 A와 피실험자 B” 따위의 딱딱한 구성 대신, 축구와 영화, 방송 프로그램,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등 지은이의 다양한 일상 속 경험을 끌어와 흥미를 자극하며 편안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만주 땅은 우리 것, 대마도도 양보 못한다’는 가사가 있는 고려대생의 노래 를 이야기하면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 모습 안에 집단의 믿음을 필연적인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집단극단화’라는 착각이 녹아 있다는 것. 비브리오 패혈증이 유행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오히려 좋은 횟감이 많다며 횟집으로 달려가는 ‘청개구리’ 친구 이야기에선 어떤 사건을 실제 확률보다 잠깐의 인상으로만 평가하려는 ‘가용성 방략’ 이론을 설명한다. 또 영화 과 이태원 살인사건 이야기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법원의 ‘합리적 의심’의 한계를 짚으며 ‘사회적인 착각’을 거론한다.

지은이는 “심리학자인 나도 늘 착각을 하며 산다”고 솔직히 밝힌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살기” 때문에 “가끔은 제정신”이어야 한다는 제목이 더욱 와닿는다. 그는 “우리가 저지르는 수많은 착각들을 마치 없애야 할 나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심리학적 관점도 아니고, 이 책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착각 자체를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착각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 자체가 또다른 착각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심리학자로서 착각에 빠져 있는 사회를 향한 말도 아끼지 않는다. 극단적인 생각이나 과격한 표현만이 진정성 있다고 받아들이는 우리가 가끔은 착각에서 빠져나와 100% 옳거나 100% 틀린 생각은 없다는 열린 생각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에세이와 심리학 전문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어서 마지막까지 유머감각이 흥건한 지은이의 문장에 풋, 웃음을 짓게 된다. “나의 아내, 아이들, 그리고 제자들이 나를 향해 품고 있는 착각에서 깨어나지 말게 하소서.”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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