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이 찾던 ‘합일’ 도덕경에 있었다

노자의 철학과 융의 학설 엮어
‘도덕경’ 분석심리학 관점서 풀이
시공간 넘어 인간탐구 ‘한마음’


노자와 융-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이부영 지음/한길사·1만8000원

흔히 동양과 서양의 사고 체계는 서로 달라서 쉽게 만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문명 속에서 제각기 숙성시켜온 개념이나 생각의 틀 사이엔 확실히 높은 장벽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가운데 의외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1875~1961·왼쪽 사진)이 동아시아의 고대 철학자 노자(오른쪽)와 시공간을 뛰어넘어 깊은 교류를 나눈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융은 1920년 출간한 을 비롯한 저작들 속에서 노자의 을 직접 인용했으며,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한 인간 정신의 전체를 탐구한 자신의 작업 속에 노자 철학과 연결될 수 있는 내용들을 많이 남겼다.

국내 최고의 융 전문가로 꼽히는 이부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은 융과 노자의 연결고리에 착안해 을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이한 책이다. 이런 독특한 시도에 대해 지은이는 “현대 심리학의 통찰로써 고대 사상의 지혜를 해석하고 이해한다면 현대인이 노자에게서 새롭게 얻는 바가 많을 것이며,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정신의 전체상을 편견 없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은 ‘상징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분석심리학은 상징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이런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융 학설의 핵심은 ‘전체정신’을 일컫는 ‘자기’(Selbst)라는 개념에 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전체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것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하여 이뤄진다고 보았다. ‘자아’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무의식과 의식을 아우르는 전체정신의 중심이다. 의식에서 억압된 부분이 무의식을 형성한다고 본 프로이트의 관점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최초에 무의식이 있었고, 거기서 자아와 의식이 탄생했다’고 보기에, “무의식을 모든 정신적 창조와 변화의 근원이고 인간의 정신적 체험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자율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융에겐 우리 인간이 잊어버린 마음의 토대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가 된다.

지은이는 융이 말한 이 ‘자율적 객체정신’을 노자의 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알 수 없기에 이름조차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일단 ‘도’(道)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융이 말한 ‘자기’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또한 에서 드러나는 무(無)와 유(有)의 관계는 융이 말하는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와 연결지을 수 있다. 도의 본질은 알 수 없는 것(무)이므로, 그 작용으로 드러난 형상(유)을 통해 인식해 나가야 한다고 풀이되는 의 메시지는 자신의 무의식을 관조하고 그 속에 나타난 상징을 파악함으로써 전체정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융의 학설과 통한다는 것이다.

융이 천착했던 ‘대극’의 문제도 에서 상세한 서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융은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추함처럼 서로 대립되는 수많은 대극의 긴장과 갈등이 인간 정신의 기본조건이라고 보았고, 무의식을 통해 이런 대극을 통합하고 초월하는 길을 닦으려 했다. 주목할 것은 또한 “유와 무는 서로를 낳는다”(有無相生)며 대극을 본디 하나인 것의 양극으로 보는 ‘합일’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도의 상징으로 물을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융은 물의 이미지로부터 집단적 무의식의 보편성과 근원성, 자아의식 너머의 불확실성 등을 읽어냈다.

융과 의 연결고리를 이토록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이유는 뭘까? 지은이는 “밖에 있는 집단의 법칙과 요구에 적응한 나머지 사람은 자기자신의 뿌리를 잊고 근본에서 멀어진다”고 지적한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노자와 서구 현대의 심리학자 융 모두 인간의 마음을 우주 그 자체라고 보고, 인간 내면의 탐구라는 문제에 서로 공명했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의 차이,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두 철인이 함께 추구했던 공통의 과제였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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