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들이대는 녀석들의 심리학 / 김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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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들이대는 녀석들의 심리학 / 김의겸

친구 중에 끊임없이 여자친구를 만드는 녀석이 하나 있다. 나이 오십 줄에 머리숱은 성기고 주머니는 가벼운데도 그러니 그저 신묘할 따름이다. 비결을 물으니 답이 이렇다. “홈런 타자가 왜 홈런을 많이 치는 줄 알아? 장타자라서? 교타자라서? 아냐, 제일 중요한 건 최대한 타석에 많이 서는 거야.” 하긴 이 녀석, 예쁜 여자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작업성 멘트를 날리며 들이댄다.

이 정도면 애교다. 윤창중은 ‘들이대기’가 삶 전체를 관통한다. 그가 여성 인턴에게 한 것으로 알려진 “너와 나는 잘 어울린다”란 말이 압권이다. 나이 차가 얼추 40년인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희한하다. 물론 세상 모든 남자들은 왕자병 환자다. 여자가 별 뜻 없이 그저 한번 웃었을 뿐인데, 남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도록 진화해왔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는 직원들한테 고객에게 미소를 짓고 눈을 마주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난리가 나고 말았다. 여직원들의 상업적 친절을 일부 남성 고객들이 성적 관심으로 해석하고 성적 농담과 성적 유혹, 심지어는 스토킹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윤창중은 아예 그런 수준을 벗어난다. 상대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쏟아내는 일방주의다. 감정적 헌신과 물질적 투자는 없이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달리는 이기주의다.

이런 단기적인 성적 접근은 보는 눈이 적은 외지에서 더 노골화된다. 체면이 깎일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호젓한 호텔로 유인한 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려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동물들도 한곳에 오래 머무는 개체군보다는 이동성이 높은 것들 안에서 약탈적인 성 전략이 증가한다고 한다.

워싱턴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인내심은 바닥이 난 듯하다. 인턴 여성에게 밤새 4~5차례나 전화를 해대고 새벽 6시에 불러들인 것은 그런 조바심의 발로로 해석된다. 심리학에서는 ‘문 닫는 시간 현상’이란 게 있다. 밤이 깊어 술집이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남자들은 술집 안의 여자들을 점점 더 매력적으로 평가했다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이론이다.

윤창중의 들이대기는 여성뿐만 아니라,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그가 쓴 모든 신문 칼럼과 방송에서 한 말들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이댄 것이다. 자신을 써달라는 구애 행위다. 직장도 그에게는 들이대야 할 곳이다. 언론사 다섯 곳을 계속 옮겨다녔고, 중간중간 정치권을 왔다 가기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들이민 셈이다.

들이대는 게 삶의 유구한 전통이 돼버린 건, 치러야 할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들이댔다가 실패할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징벌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사업가들 사이에는 ‘뉴욕타임스 법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내일 아침 뉴욕타임스 1면 기사로 올라도 떳떳한지 스스로 질문해 보라는 윤리 원칙이다. 평판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크게 우세를 살 가능성이 있을 때 경계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여직원들끼리만 사용하는 에스엔에스 계정을 개설해 남자 상사들의 각종 ‘진상’을 은밀히 고발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 남자들은 움찔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은 짐작이라도 해보겠는데, 손의 쓰임새는 왜 그토록 다른지 이유를 모르겠다. 거사를 앞두고 찍은 윤봉길 의사 사진을 보면, 양손에 수류탄을 움켜쥐고(grab) 있다. 윤 의사를 할아버지라고 ‘주장’한 윤창중은 같은 손인데도 수류탄 대신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으니 말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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