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본문
사회일반
심리학자들 “피해자 치유위해 진상규명 필요”
등록 : 2014.08.27 20:35
수정 : 2014.08.27 20:35
373명 세월호법 촉구 공동성명
“정부 ‘아무것도 하지않는 폭력’ 행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데는 심리학적 이유도 있다. ‘왜 침몰했는가’와 ‘왜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당사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상규명은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서는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맞이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27일 심리학자 373명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담은 ‘진정한 특별법’의 제정 필요성이다. 이들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심리학적 설명은 세월호 사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했다. 이승욱(51) 닛부타숲 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성명 발표 뒤 와 만나 “사고 초기엔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니 이제는 유가족들을 만나지도 않고 특별법도 제정하지 않는다. 정부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폭력’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개인을 치유해도 사회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면, 이런 심리치유는 야전병원에서 ‘빨간약’ 발라주는 것밖에 안 된다. 세월호 사고는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책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했다. 박성현(48)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억압된 것은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요구 자체를 외면하고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은 심리적 억압이 되고 결국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야기한다”고 했다. 이들은 40일 넘게 단식을 이어가는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를 불신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심리학적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자기존중감을 갖지 못한 이들의 심리적 방어기제인 ‘강렬한 투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이나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박 교수는 “이들은 자기 안의 잘못된 것을 부인하기 위해 ‘나 이외에 모든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에 심리적 에너지를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런 사람들이 집단화되고 조직화되는 사회적 토양”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부 행사에는 늘 관변단체가 동원되고, 인터넷에서는 ‘일베’ 회원들이 활동한다. 어느 사회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을 집단화하고 조직화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심리학자들은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요구가 “거대한 희생과 맞바꾼 안전을 향한 절박한 바람”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이런 큰일이 터지면 처음엔 슬퍼하지만 나중에는 ‘산 사람은 살자’며 회피하려 한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닷속은 무의식과도 같다. 무의식 속에 가두지 말고 다 건져내야 한다.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야 우리 사회가 부식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