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닮]“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책은 안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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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병원

[부러우면닮는거다]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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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놀 거리가 넘쳐나서인지 우리나라 책 판매량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손익 분기점인 3천부 이상 팔리는 것이 출간되는 책 중 20% 정도고 이 중 20%만이 만 부를 넘긴단다(김혜남 선생이 편집자들에게 들은 얘기라고). 10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은 저자나 편집자의 역량을 넘어서 하늘이 돕는 거라는 출판계 속설이 엄살은 아닌 셈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난 2008년 초 발간됐다. ‘심리학’과 ‘서른 살’이라는 단어가 출판계를 뒤덮게 만든 베스트셀러로 오른 것은 물론 지금까지 끊임없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젊은이들에게 ‘서른 살이 되면 어쩐지 읽어야할 것 같은’ 책으로 인식되면서 선물용으로도 많이 팔린다고. 속편인 심리학이 서른 살에 답하다 판매부수까지 합치면 80만부가 넘는 메가 베스트셀러다.

정작 이 책을 쓴 ‘작가’ 김혜남 선생은 아직도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좋은 점은 한 가지란다.

“출판사에서 원고 독촉을 안 하더라고요, 하하.”

작가들은 다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지만 그는 글이 안 써지면 그냥 놔버린다. ‘딴 짓’하다보면 풀리는 순간이 있다고.

‘서른 살’ 시리즈는 원래는 김혜남 선생이 직접 구상한 기획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어른으로 산다는 것 같은 심리학책들을 계속 써왔던 그에게 출판사 측에서 ‘서른 살’을 주제로 한 심리학책을 써줄 것을 제안한 것.

“서른 살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환자들을 만나면서 요즘 서른 살은 후기 청소년기의 방황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대 때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그대로 안고 사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더라고요. 제의를 받아들였죠.”

그는 대중을 위한 글을 쓸 때는 논문 준비부터 한다. 저널, 논문 등을 통해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지나며 주제를 자기 것으로 만든 후 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는 좀 달랐다. 우선 김혜남 선생 자신이 서른 살을 방황하는 과정없이 공부만 하면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쓰려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고민을 갖고 온 이가 날 찾아오면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 안에서 나오는 얘기를 썼어요. 학문적인 내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그러다보니 소통과 공감이 느껴졌나 봐요. 가르치고 지시하는 책보다는 위로하고 공감하는 책이 더 필요한 시기였구나 싶었죠.”

여기서 10만 부 이상은 하늘에서 만든다는 속설이 맞아떨어졌다. 원고는 2007년 가을에 나와 있었다.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이 2월로 밀렸다. 김혜남 선생은 이 때가 사람들이 ‘꼭 해야 할 ~가지 것들’ 류의 자기계발서에 물리기 시작한 때라고 분석한다.

“피곤했던 거죠. 뭐 해야한다, 이런 말에 지쳐있던 차에 소통과 공감을 들고 나온 책이었으니 반응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정대로 나왔으면 많이 팔려봤자 10만권 정도 아니었겠어요.”

예전에 쓴 책은 때로 독자들에게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는 독자들은 이해가 잘 된다고 말하는데 정신과 레지던트들이 어려워했다.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반 독자들과는 달리 글에 전문용어를 붙여가며 분석적으로 읽었으니 불편할 수밖에.

“어쨌거나 돈은 많이 벌었어요. 하하. 제 입장에서는 더 다양한 좋은 책들이 팔리고 제 책은 덜 팔리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하지만 덕분에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겼어요. 아파트 판 돈에 대출도 보태긴 했지만.”

일곱 명 대식구가 공간이 작은 아파트에서 2층 단독주택으로 옮기면서 서재도 생겼고, 지하에는 좋아하는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바도 들여놓았다. 문제는 서재에 앉아서 글을 쓰는 대신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고, 커피를 끓이게 됐다는 점이라고. 작은 책상 하나를 겨우 차지할 수 있었던 예전에는 책을 다섯 권을 썼는데 이사한 후에는 아직 쓰고 싶은 꺼리가 잡히지 않았다. ‘공포’를 주제로 1/3정도 작업을 진행했지만 때가 아니다 싶어 밀어뒀다고.

“뭔가 궁핍한 게 있어야 글이 나온다”는 나름의 깨달음은 얻게 됐지만 다시 아파트의 책상 앞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심리학책을 쓰는 사람들의 삶은 그들의 글처럼 평온하고 온화할까. 김혜남 선생이 웃는다.

“부부싸움하면 남편이 그래요, ‘당신 책 좀 읽어 봐!’ 책은 그렇게 써놨으면서 왜 그렇게 못 사냐는 거죠. 그럼 제가 그러죠,‘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책을 안 썼어!’ 하하.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왜 안 될까 하는 맘으로 글을 쓰는 거죠, 다 그렇지 않을까요? 글을 쓰면서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고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당신들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을 테지만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면서 그렇게 살아가자고 하는 거고요.”

본격적으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려다 병을 앓게 되는 바람에 기회를 잃었다.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좌절이 아닌 새로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우연한 일이였죠. 아직 정신과 의사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작가라 불리면 남의 옷을 입은 거 같아서 불편해요. 예전에는 쓰는 게 어렵지도 않고 몇몇 사람들이 공감을 보여주는 것이 즐거웠는데 지금은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이 좀 느껴져요. 겁도 나고, 하하.”

독자에게서 받은 뜨거운 애정을 그는 요즘 강연으로 보답하고 있다. 돈 많이 주고 시간 적게 주는 대기업 초청 대신 돈은 적게 줘도 시간은 마음껏 쓰라고 하거나,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이들의 강연 요청을 더 기꺼이 받아들인다. 시간을 내서 자신을 찾은 젊은이들에게 조언도 주지만 때로는 배우기도 한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현장에서 보면서 그는 몸속에 후속편을 위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이 재료들이 김혜남 선생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착실히 익어간다면, 우리는 하늘이 도운 베스트셀러 또 한 권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

글·사진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김혜남 선생이 부러워하는 사람은?

오성훈 (인천나누리병원 원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존경하는 분요? 아니, 부러워하는 분이라고요? 글쎄, 특별히 누굴 부러워한 적은 없는데…. 제가 병을 앓고 나서 미국 유학 갈 꿈을 접었다고 했잖아요. 가끔 갔더라면 하는 생각은 하는데 지금 저한테 만족해야죠. 잃어버린 것을 돌아보면 뭐해요. 제 병은 제 일부분인데 그걸 없었더라면 하고 부정하면 저 자신을 부정하는 게 될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인터뷰에서는 인천 나누리병원 오성훈 원장님을 추천하고 싶네요. 한양대병원 과장을 지내며 국내외 학회활동과 외국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기도 한 분인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환자와 만나고 치료하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진료 일선으로 뛰어들어 주변을 놀라게 하신 분이세요. 환자 한 분 한 분 안고 보듬어주며 치료하는 열정과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물론 강의도 잘 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신데, 끊임없이 노력도 하시는 분이예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그분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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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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