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13년 동안 살았었던 베를린을 방문하면 항상 놀라게 된다. 모든 게 그대로다. 그곳을 떠난온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까지 변한 게 거의 없다. 물론 동·서독을 가로지르던 장벽 주변은 아주 새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산책(Spaziergang)’이라는 문화적 행위를 처음 배운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를 가로지르는 슈프레(Spree)강 주변의 분위기는 언제 가도 한가롭고 따뜻하다.
봄날 강 주변 노천카페에서의 늦은 아침식사는 내게 행복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경험되는지를 알려 줬다. 아, 그곳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으면 슈프레강의 봄 냄새, 바람 소리가 기억난다. 이렇게 각인된 구체적 감각을 ‘문화적 기억(kulturelles Gedaechtnis)’이라고 한다. 내 존재는 이런 문화적 기억의 편집 혹은 ‘앙상블(ensemble)’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인간 존재론을 비판하며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das ensemble der gesellschaftlichen Verhaeltnisse)’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문화적 기억’과 ‘사회적 관계’의 차이는 단순한 레토릭의 차이가 아니다(이에 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 문화적 충격은 독일로 유학 갔을 때보다 더 심했다. 문화적 기억은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지난 세기 이렇게 빨리 변한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서구인들은 분당이나 일산과 같은 도시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한다.
도시는 단순히 건물과 상수도, 하수도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만나게 되는 오래된 풍경과 같은 문화적 경험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냐는 이야기다. 문화가 빠진 존재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어쨌든 해냈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고층 아파트 사이로 편집되는 문화적 기억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존재의 기반이 되는 ‘문화적 기억’이 빠져 있는 그 자리에 ‘분노’ ‘공격성’ ‘적개심’이 자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의 정치적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내 가설이 맞는 듯하다).
한국의 신도시를 볼 때마다 서구인들이 보이는 놀라움 뒤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다. 문화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한국보다 훨씬 앞서 정말 황당한 일을 꾸민 나라가 있다. ‘미쿡’이다. 한국처럼 도시 몇 개의 수준이 아니다. 규모가 전혀 다르다. 그 엄청난 대륙에 그 어떤 문화적 족보도 없는 ‘제국’을 만든 것이다. 이젠 많이 기울었다고 하나 여전히 미국이 대세다.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이 눈뜨고 있을 동안에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팍스 아메리카나’다.
‘민족’ 없이 편집된 국가-‘미쿡’
미국은 근대 서구문명의 깔때기다. 유럽 근대화의 모든 유산이 깔때기처럼 한곳으로 몰려 새롭게 편집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토대에서 출발해야 했다. 일단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을 가능케 했던 ‘민족’이라는 개념이 미국에서는 성립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민족은 근대 이후에야 비로소 기능하기 시작한 가공의 이념이다. 그 이전에는 왕의 국가, 신의 국가였을 따름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900년대 이후에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이전의 문헌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식민지에 맞서기 위한 저항의 이념으로 ‘민족’이 강조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의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상상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다. ‘민족’ 개념 또한 부정적 뉘앙스로 변하고 있다. 그 화용론적 생명이 다했다는 이야기다. 아, 예외가 있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다. 당시 독일인들은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통일되기 바로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은 동독 공산당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우리가 바로 그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고 외쳤었다. 공산당의 주체인 바로 그 인민이라는 주장이다. 정관사(das)에서 부정관사(ein)로 바뀌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인민’이 ‘독일 민족’으로 변한 것이다. 당시 독일 지식인들은 독일 민족주의의 부활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ein Volk’는 세계화라는 대세에 부응해 몇 년 후 유럽연합의 ‘유러피언(European)’으로 변하게 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여전히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이다. 분단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 거다. 한 민족이 헤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산가족’의 당위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헤어진 가족을 만났다고 울며 불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민족 개념이 변증법적 해체의 과정을 걷는 것처럼 ‘한민족’이라는 식민지 시대와 분단의 구성물을 발전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
지난 세기 미국이 잘나간 것은 바로 이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있다. 일단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형성된 나라다. ‘민족’이라는 이념으로 도무지 묶이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가능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족이나 역사 등의 문화적 배경과는 무관한 개인들을 연구하는 미국식 심리학은 아주 유능한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바로 ‘행동주의(behaviorism)’다.
라이프치히 대학의 빌헬름 분트에게서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실험 방법론만 빼내 발전시킨다. 분트가 연구하고자 했던 ‘내성법(introspektion)’에 의한 심리학 연구는 ‘과학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리학에서 제외된다. 자기성찰이라는 지극히 애매한 인식 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식은 객관적 심리학의 방해요인일 따름이다. ‘그것, 나, 위의 나’ 따위로 인간 내면을 편집하는 ‘황당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당연히 아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대신 ‘자극(input)’과 ‘반응(output)’이라는 눈에 보이고 통제할 수 있는 요인만을 심리학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왓슨(Watson)이나 스키너(Skinner)의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통제할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요인을 건드리면 어떤 행동이 결과로 나오는가만 알면 된다.
아메리카를 차근차근 편집한 美 심리학
행동주의는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그 유명한 ‘침 흘리는 개’를 획기적으로 변형시킨 이론이다.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듣게 하면 나중에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는 그 파블로프의 개는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다. 그저 묶여서 먹이를 받아 먹고 종소리를 듣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침은 가끔 흘리고. 그러나 ‘스키너 상자’에 갇힌 쥐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벽의 지렛대를 눌러야만 먹이를 얻어먹을 수 있다. 먹이를 얻어먹으려면 반드시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을 통한 ‘강화(reinforcement)’ 시스템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토대가 된다. 즉 성과에 따른 보상과 처벌을 다양한 방식으로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자신감이 가능해진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느닷없이 나타난 ‘듣보잡’의 미국식 경영학이 오늘날 대학의 최고 인기 분야가 되는 이유도 이 스키너식 행동주의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오늘날 경영학의 중요 영역인 인사관리, 평가 시스템이란 그 근본을 들여다보면 스키너의 행동주의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심리학은 보다 과감해진다.
실험심리학 방법론에 따르면 실험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실재 사회를 축소해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 심리학은 이런 전제를 아예 뒤집어 버린다. 사회를 축소해 실험실로 들여오는 대신 실험실을 확대해 사회 전체를 아예 심리학 실험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심리학 방법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문화와 역사가 일천한 신생국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서양의 근대화를 수십 년에 이뤄 낸 한국의 압축성장이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듯, 당시의 미국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복잡한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다. 미국 심리학은 이를 극복해 낼 다양한 방법론을 차근차근 개발해 나간다. 일단 사회 변동의 과정에서 야기된 다양한 사회심리학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임상심리학·상담심리학 분야가 미국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이유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는 병사들을 평가하고 진단하는 심리검사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지능검사 등도 세련된 방식으로 거듭 개발된다(당시 한국의 모든 학교에서도 행해졌던 그 미국식 지능검사에 따르면 내 아이큐는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109였다. 단언컨대 그 검사는 틀렸다. 어릴 때부터 난 잔머리의 대왕이었다. 내 점수가 낮았던 이유는 내 뛰어난 잔머리를 평가할 수 없는 미국식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검사문항들 때문이다).
객관화·표준화·합리화라는 유럽식 모더니티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내면을 평가하고 측정하는 미국 심리학에서 활짝 꽃피게 된 것이다. 통계학이 심리학의 필살의 무기로 자리 잡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그 복잡한 내면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이제부터 인간의 마음은 얼마든지 계산 가능, 예측 가능, 더 나아가 통제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이념 없이 새로운 국가를 구축해야 했던 미국식 국가주의 또한 심리학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아메리카 이념을 각 개인에게 심어 주기 위해 심리학 이론에 기초한 다양한 교육방법론이 개발된다. 특히 매스미디어·스포츠 등을 통해 반복되는 미국식 의례는 그 어떤 민족보다도 확고한 국가주의로 무장한 ‘아메리칸’을 양산한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미국인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국가를 부르는 이들도 없는 거다. 미국의 야구·미식축구 등 모든 운동경기는 반드시 국가를 부르고 시작한다. 이런 방식의 미국식 대중심리학적 조작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하다. 오죽하면 미국과는 아무 관계없는 나조차 ‘오, 세이 유 캔 시…(Oh, say you can see…)’로 시작하는 미국 국가를 듣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젠장, 어떤 때는 감동해 눈물까지 나오려 한다. 미국 심리학은 이렇게 ‘아메리카’를 차근차근 편집해 온 것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